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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사이클 비교연구 — 다섯 번의 겨울, 여섯 번째 질문

1996 D램·2001 광통신·2018 정점·2023 하강·2025 딥시크, 다섯 번의 붕괴를 같은 잣대로 재검증한다 — 수요가 죽어 망한 겨울은 없었다. 2026년 현재 좌표는 상승 후반부와 선행 조정의 겹침이다

해해랑달·Founder Analyst2026년 7월 20일읽기 96분테마 심층
한 줄 결론

다섯 번의 겨울에서 수요가 죽어 망한 적은 없다 — 공급이 수요보다 빨리 늘어 망했고, 주가는 실적을 1~2분기 앞서 꺾였다. 2026년 6월 고점 이후의 메모리 주가 조정은 법칙의 반복이며, 남은 질문은 하강의 깊이 — 마이너스 50%인가 마이너스 15%인가 —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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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Brief — 30초 요약

고급
왜 지금

SOX 7월 17일 고점 대비 −20.2% 약세장 진입, 코스피 −28.5%(7/20 종가).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분기 영업이익 89.4조원 발표일에 급락했고, D램 계약가 상승률은 1분기 +90%대에서 3분기 전망 +13~18%로 감속 중이다.

수혜·피해

계약 구조 분화로 다음 하강은 3사 각자의 겨울이 된다 — 하한과 테이크 오어 페이를 쥔 마이크론이 이익 바닥 검증에 가장 유리하고, 현물 노출이 큰 삼성전자가 판가 하락을 가장 직접 흡수하며, SK하이닉스는 HBM 수급이 독립 변수다. 규율 밖의 CXMT는 2027~28년 공급 변수다.

모니터링

7/22 알파벳 캐펙스 가이던스 → 7/29 주간 마이크로소프트·메타·SK하이닉스 실적. HBM 웨이퍼 비중(18→22%), 착공 전 계약 비율 공개 여부, 하이퍼스케일러 신용 스프레드, 서버 D램 현물-고정 스프레드, CXMT 수율·증설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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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깊이

비교의 틀 — 여섯 개의 축

사이클 비교가 인상 비평이 되지 않으려면 축을 먼저 고정해야 한다. 다섯 사례와 현재를 관통하는 비교 축은 여섯 개다.

① 수요·공급 증가율 격차

메모리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의 절대 크기가 아니라 비트(용량) 기준 수요 증가율과 공급 증가율의 차이다. D램 비트 수요는 지난 40년간 연 40%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그 기간 D램 업체 대다수가 퇴출되었다. 절대 수요의 성장은 아무도 구하지 못했고, 격차의 부호와 크기만이 가격의 방향과 폭을 정했다.

② 공급 리드타임과 캐파 파이프라인

격차의 시차를 만드는 것은 팹 건설 리드타임이다. 착공에서 양산까지 통상 3년 안팎이 걸리므로, 호황기의 투자 결정은 호황이 끝난 뒤에 공급으로 도착한다. 지금 발표되는 증설이 언제 웨이퍼로 바뀌는지, 그리고 그 시점에 수요가 어디에 있을지가 두 번째 축이다.

③ 수요의 가격탄력성

가격이 떨어질 때 물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가 하강의 깊이를 정한다. 탄력성이 0에 가까우면 가격에 바닥이 없고, 1을 넘으면 가격 하락이 오히려 산업 매출을 키운다.

④ 판매 계약 구조

공급자가 수요 리스크를 얼마나 구매자에게 이전했는지의 축이다. 계약이 없던 시대, 계약은 있었으나 상대방이 사라진 시대, 1년짜리 취소 가능 계약의 시대, 그리고 5년 테이크 오어 페이의 시대는 같은 공급 과잉에서 전혀 다른 손익 경로를 만든다. 다만 계약의 가치는 조건과 상대방 신용의 곱이며, 상대방의 헤지 행동으로 실질 구속력이 명목보다 약해질 수 있다.

⑤ 증설 자금의 조달 구조와 신용

누가 어떤 돈으로 캐파를 짓는가. 재벌 부채, 정크본드와 벤더 파이낸싱(공급자가 고객에게 구매 대금을 빌려주는 구조), 자체 현금흐름, 그리고 고객 선급금은 하강기에 완전히 다른 생존 곡선을 그린다. 조달 구조는 하강의 깊이보다 하강의 전염 경로를 정한다.

⑥ 경쟁 구도와 신규 진입

공급 규율을 깨는 것은 언제나 한계 진입자였다. 1990년대의 신규 팹 러시, 2010년대 이후의 3사 과점, 그리고 중국 신규 공급의 등장은 같은 수요 환경에서도 다른 공급 곡선을 만든다.

축핵심 질문측정 지표
① 증가율 격차공급이 수요보다 얼마나 빨리 늘었나비트 기준 공급·수요 증가율 차
② 리드타임지금의 투자가 언제 공급이 되나착공~양산 시차, 점등 시간표
③ 가격탄력성가격이 떨어지면 물량이 얼마나 느나판가 대비 물량 반응, 매출 방향
④ 계약 구조수요 리스크를 누가 지는가계약 기간·상한하한·선급금·커버리지
⑤ 조달·신용증설 자금이 어디서 오는가부채 의존도, 상대방 신용 스프레드
⑥ 경쟁 구도공급 규율 밖의 참가자가 있는가신규 진입자 캐파·수율·조달
축
① 증가율 격차
핵심 질문
공급이 수요보다 얼마나 빨리 늘었나
측정 지표
비트 기준 공급·수요 증가율 차
축
② 리드타임
핵심 질문
지금의 투자가 언제 공급이 되나
측정 지표
착공~양산 시차, 점등 시간표
축
③ 가격탄력성
핵심 질문
가격이 떨어지면 물량이 얼마나 느나
측정 지표
판가 대비 물량 반응, 매출 방향
축
④ 계약 구조
핵심 질문
수요 리스크를 누가 지는가
측정 지표
계약 기간·상한하한·선급금·커버리지
축
⑤ 조달·신용
핵심 질문
증설 자금이 어디서 오는가
측정 지표
부채 의존도, 상대방 신용 스프레드
축
⑥ 경쟁 구도
핵심 질문
공급 규율 밖의 참가자가 있는가
측정 지표
신규 진입자 캐파·수율·조달

이 여섯 축에 더해, 시장 신호의 축 — 주가가 실적 대비 몇 분기 선행했는가 — 를 사례마다 함께 기록한다. 이 선행성이야말로 현재 좌표를 읽는 데 필요한 눈금이다.

사례 I·II — 1996 D램, 2001 광통신: 계약 이전의 겨울과 계약이 있어도 무너진 겨울

Key Points
  • —계약은 상대방과 함께 사라진다 — 다만 매설되면 영원히 남는 광섬유와 실장되면 소진되는 메모리의 물성 차이 때문에, 같은 과잉이라도 겨울의 길이는 다르다.

사례 I. 1995~1998 — 윈도우 95 슈퍼사이클과 첫 번째 붕괴

1993~1995년의 메모리 호황은 이후 모든 슈퍼사이클의 원형이다. 윈도우 95 출시와 PC 보급 폭발로 D램 수요가 공급을 앞질렀고, 4Mb와 16Mb D램의 현물·계약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선두 업체들의 총마진은 50%를 훌쩍 넘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이익을 갈아치웠고, 반도체는 1995년 한국 전체 수출의 13%대를 차지하며 한국 산업사 최대 호황으로 불렸다. 수요 서사도 완벽했다. 인터넷이 오고 있었고, PC 보급률은 향후 10년간 폭발할 예정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호황은 공급 응답을 불렀다. 일본 기존 업체와 신흥 한국 업체들이 공격적 증설과 공정 미세화로 대응하면서, 1995~1996년 두 해에만 약 50개의 팹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반도체 생산액 대비 설비투자 비율은 30%를 넘어섰고, 수율 개선이 웨이퍼당 비트 산출을 끌어올리며 공급 증가를 한 번 더 증폭시켰다. 1995~96년을 지나며 시장은 부족에서 과잉으로 뒤집혔다.

D램 가격은 1995년 말 정점을 찍고 연평균 기준 1996년 51%, 1997년 65% 무너졌다. 달러/메가비트 기준 평균 가격은 1995년 3달러 이상에서 1998년 16센트 아래로, 3년 만에 스무 배 가까이 싸졌다(EDN 장기 시계열). 메모리 업체 주가는 고점 대비 60~80% 하락했고, 한국 반도체 3사의 과잉 투자 충격은 타 산업의 과도한 레버리지와 결합해 외환위기의 한 축이 되었다.

결정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그 붕괴의 해에 최종 수요는 성장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집계 기준 1996년 전 세계 PC 출하량은 7,220만 대로 전년 대비 21.7% 늘었다(집계 기관에 따라 17~18%로도 잡히지만, 어느 쪽이든 두 자릿수 성장이다). 수요가 20% 넘게 늘어나는 동안 가격이 51% 빠진 것이다. 수요 예측이 틀려서 망한 것이 아니라, 맞은 수요 위로 공급이 더 빨리 쏟아져서 망했다.

주요 하강기 D램 가격 하락률 (자료: EDN·세미어낼리시스·업계 집계)
주요 하강기 D램 가격 하락률 (자료: EDN·세미어낼리시스·업계 집계)

<Chart 01> 주요 하강기 D램 가격 하락률 (자료: EDN·세미어낼리시스·업계 집계)

주가의 시간표를 붙이면 선행성이 드러난다. 마이크론 주가는 1995년 9월에 정점을 쳤고, D램 가격의 정점은 1995년 말이었다 — 주가가 가격을 약 한 분기 앞섰다. 그리고 장중 고점 기준으로 정점에서 1996년 7월까지 열 달 만에 82%가 사라졌다. 한국 시장도 같은 순서였다 — 반도체 3사 주가는 실적이 사상 최대를 갈아치우던 구간에 이미 고점을 만들었고, 이후 실적 붕괴와 외환위기 국면을 거치며 고점 대비 60~80%의 하락을 완성했다. 첫 사이클부터 순서는 주가, 가격, 실적이었다.

1996~98년의 붕괴는 산업 구조 자체를 다시 썼다. 40년 시계열로 보면 D램에 진입했던 23개 안팎의 회사 중 살아남은 것은 3개다. 이 통계가 말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연 40%씩 자라는 산업혁명급 수요조차 개별 공급자를 구하지 못한다. 둘째, 생존자의 조건은 수요 예측 능력이 아니라 하강기를 버티는 대차대조표와 원가 지위였다. 오늘의 3사 과점은 그 학살의 결과물이며, 3사가 2023년에 보여준 동시 감산 규율은 이 역사를 통과한 생존자들의 학습된 행동이다. 그리고 그 규율의 바깥에서 자국 자본시장의 자금으로 증설하는 창신메모리(CXMT)는, 정확히 이 학습을 공유하지 않는 참가자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거시 전이 경로다. 당시 한국 반도체 3사의 과잉 투자는 기업 단위의 손실로 끝나지 않고, 종금사 단기 외화 차입으로 연결된 재벌 부채 구조를 타고 1997년 외환위기의 한 축이 되었다. 산업 사이클이 조달 구조를 매개로 거시 위기로 전이된 첫 사례다.

사례 II. 1999~2002 — 광통신 붕괴, 계약이 있어도 무너진 사례

광통신 버블은 메모리 사이클의 인접 사례이지만, 이번 사이클과의 비교에서는 오히려 더 중요한 참조점이다. 계약이 존재했는데도 무너진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통신사와 신생 사업자들은 인터넷 트래픽 폭발 전망 위에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집행했다. 글로벌크로싱은 27개국 200여 개 도시를 잇는 10만 마일 이상의 해저·지상 광케이블망을 깔았고, 장기 사용권() 계약이라는 형태로 캐파를 선판매했다. 그리고 트래픽 전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 인터넷 사용량은 이후 10년간 예측 이상으로 폭발했다.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지불 주체였다. 캐파를 사겠다고 계약한 통신사와 닷컴 기업들이 먼저 무너지면서 계약은 종잇조각이 되었다. 글로벌크로싱은 2002년 1월 28일 자산 224.4억 달러, 부채 123.9억 달러를 신고하며 당시 미국 역사상 네 번째로 큰 파산을 기록했다. 360네트웍스는 9억 달러 IPO 14개월 만인 2001년 6월에 파산했다. 월드컴은 2002년 7월, 캐파 스왑으로 매출을 부풀리고 비용을 자본지출로 재분류한 38억 달러 — 이후 110억 달러 규모로 확인된 — 회계부정과 함께 당시 사상 최대인 총자산 1,000억 달러대 파산을 신고했다.

공급 과잉의 물리적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1999~2004년 사이 매설된 광케이블 중 실제로 점등되어 데이터를 실어 나른 비중은 5% 미만으로 추정되며, 2001년 시점에 전체 가닥의 85~95%가 다크 파이버로 남았다. 대역폭 도매가격은 90% 폭락했고, 2000~2002년 사이 글로벌 통신 섹터 시가총액에서 2조 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장비 체인도 함께 무너져 코닝 주가는 100달러 위에서 2달러 근처까지 떨어졌다.

주가 고점의 사다리 — 한계 사업자부터 꺾인다

광통신 사례에서 주가 고점은 한 번에 오지 않고 사다리처럼 내려왔다. 가장 먼저 꺾인 것은 신용이 가장 약한 한계 사업자였다. 글로벌크로싱 주가는 1998년 8월 상장가 9.5달러(분할 조정)에서 불과 7개월 만인 1999년 초 64달러까지 치솟아 시가총액 470억 달러로 GM을 잠시 넘어섰는데, 그 지점이 사실상의 정점이었다 — 파산보다 3년 가까이 이른 시점이다. 다음이 장비·소재 체인이었다. 노텔은 2000년 7월 정점에서 시가총액이 미화 2,500억 달러에 육박했고(캐나다달러 기준 3,600억을 넘겼다), 코닝은 2000년 9월 1일이 사상 최고 종가였다. 캐펙스의 정점은 2000년, 파산의 정점은 2001~2002년이었다. 즉 순서는 한계 수요자의 주가, 공급 체인의 주가, 실물 투자, 신용 이벤트였고, 각 단계 사이에 1년 안팎의 시차가 있었다. 트래픽이라는 최종 수요는 이 사다리가 다 내려간 뒤에도 계속 자랐다.

이 사다리를 현재에 겹치면 읽는 법이 생긴다. 이번 체인에서 한계 수요자에 해당하는 것은 자기 현금흐름이 아니라 조달에 의존해 컴퓨트를 사는 신생 클라우드 사업자들이고, 공급 체인에 해당하는 것이 메모리·광모듈·전력기기다. 광통신의 문법대로라면 감시 순서는 한계 수요자의 주가와 조달 조건이 먼저, 공급 체인의 주가가 다음이다. 2026년 상반기 신생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조달 스프레드와 주가가 먼저 흔들리고 이후 메모리주가 조정에 들어간 순서는, 이 문법과 어긋나지 않는다.

— 공급자가 수요를 빌려준 시장

광통신 버블의 조달 구조에는 메모리 역사에 없는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었다. 벤더 파이낸싱 — 장비 공급사가 고객의 구매 대금을 직접 빌려주는 구조다. 루슨트와 노텔은 신생 통신사에 수십억 달러를 대출해 자사 장비를 사게 했고, 그 매출로 실적을 만들었으며, 고객이 파산하자 대출과 매출이 동시에 증발했다. 수요가 공급자의 신용으로 만들어진 수요였던 셈이다. 이 장치는 버블 판별의 리트머스로 남았다. 오늘의 AI 인프라 체인에서 칩 공급자가 클라우드 신생 업체에 지분을 넣고 그 업체가 다시 칩을 사는 순환 출자·순환 매출 구조, GPU 담보 대출 시장의 형성 등은 형태를 바꾼 벤더 파이낸싱의 재등장으로 읽을 소지가 있다. 메모리 3사의 장기계약 선급금은 방향이 정반대 — 고객이 공급자에게 돈을 미리 내는 구조 — 라는 점에서 벤더 파이낸싱보다 건전하지만, 그 선급금의 원천이 하이퍼스케일러의 부채 발행이라면 사슬의 끝은 결국 채권시장이다.

이 사례가 현재에 주는 교훈은 두 겹이다. 첫째, 계약의 가치는 계약 조건과 상대방 신용의 곱이다. IRU는 5년짜리 테이크 오어 페이와 형식상 유사했지만, 서명한 상대방의 대차대조표가 정크본드와 벤더 파이낸싱으로 지어진 모래성이었다. 지금의 장기공급계약 상대방은 지구상에서 신용이 가장 좋은 기업들이지만, 그들의 설비투자가 잉여현금흐름을 넘어 부채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축의 감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둘째, 광섬유는 소모되지 않지만 메모리는 소모된다. 한 번 매설된 광케이블은 영구적 공급으로 남아 가격을 10년간 짓눌렀다. 반면 메모리는 서버에 실장되어 소진되는 소모재이므로, 과잉 공급도 재고 소진과 감산을 통해 수 분기 안에 해소된다. 광통신의 겨울이 10년이었고 메모리의 겨울이 4~8분기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6년은 "수요가 크니까 괜찮다"는 논거가 왜 논거가 아닌지를 증명했고, 2001년은 "계약이 있으니 다르다"는 논거의 반례다. 계약은 상대방과 함께 사라진다 — 다만 매설되면 영원히 남는 광섬유와 실장되면 소진되는 메모리의 물성 차이 때문에, 같은 과잉이라도 겨울의 길이는 다르다.

사례 III·IV — 2018 디커플링과 2022~23 가장 정직한 하강

사례 III. 2016~2019 — 슈퍼사이클 정점과 주가-실적 디커플링

2016년 하반기부터 모바일 고사양화와 서버·클라우드 수요가 겹치며 메모리는 두 번째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그 정점 부근인 2017년 11월 26일, 모건스탠리는 "잠시 멈출 시간(Time For a Paus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낸드 가격 하락과 이듬해 이익 성장 둔화를 이유로 삼성전자와 웨스턴디지털, TSMC의 투자의견을 낮췄다. 국내 시장이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기억하는 그 보고서이며, 발표 직후 대상 종목들은 동반 급락했다. 흥미로운 디테일 하나 — 같은 보고서에서 모건스탠리는 D램 수급을 낸드보다 낫게 보아 마이크론에 대해서는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저승사자의 칼끝도 처음에는 낸드를 향해 있었다.

보고서 이후에도 실적은 1년을 더 달렸다. 2018년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은 58.9조원으로 2017년의 53.65조원을 다시 넘긴 사상 최대였다. 미국의 유일한 순수 메모리 회사 마이크론도 분기마다 사상 최대에 가까운 실적을 발표했다. 그런데 주가는 그사이에 무너졌다. 마이크론 주가는 2018년 5월 약 64달러에서 정점을 쳤고, 매출과 마진은 그로부터 두 분기 뒤인 2018년 4분기(회계 기준)에야 정점을 찍었다. 12월 주가는 약 28달러 — 7개월 만에 56%가 사라졌고, 그 7개월 내내 회사는 기록적인 실적을 발표하고 있었다.

한국 시장의 시간표는 더 흥미롭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보다 반년 먼저인 2017년 11월 초 — 저승사자 보고서 직전 — 액면분할 전 기준 287만원대에서 고점을 만들었고, 이후 실적이 사상 최대를 경신하는 1년 내내 흘러내려 2019년 1월 초 액면분할 후 기준 3만 6,850원, 고점 대비 약 35% 아래에서 바닥을 찍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5월 하순 9만 7,700원으로 마이크론과 같은 달에 고점을 만들었고, 연말까지 약 40% 하락했다. 실적 정점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모두 2018년 3~4분기, D램 계약가 정점도 2018년 3분기였다. 정리하면 삼성전자는 실적 정점을 3분기, 마이크론·SK하이닉스는 1~2분기 선행했다 — 같은 사이클 안에서도 사업 구조가 다양한 종합 반도체가 순수 메모리보다 먼저 꺾였다. 그리고 바닥의 시간표도 어긋났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는 2018년 12월~2019년 초에, 즉 실적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도 전에 저점을 만들었고, 이후 실적 붕괴가 진행되는 2019년 내내 주가는 오히려 회복했다.

2018년 5월 정점에서 마이크론의 선행 PER(주가를 향후 12개월 컨센서스 이익으로 나눈 값)은 4~5배였다. 겉보기에 역사상 가장 싼 주식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7.77조원으로 52.8% 감소했고, 마이크론 총마진은 2018 회계연도 58.9%에서 2020 회계연도 30.6%까지 내려갔다. 2019년 초 D램 계약가격은 분기 30% 가까이 빠지며 8년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선행 PER은 주가를 내년 컨센서스 이익으로 나눈 값이므로, 시장이 그 이익을 믿지 않으면 PER은 자동으로 낮아진다. PER 5배는 싸다는 뜻이 아니라 시장이 분모를 부정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2018년의 시장은 옳았다. 지금 삼성전자 4.4배, SK하이닉스 4.7배 — 그리고 마이크론 6.8배 — 의 선행 PER을 읽는 눈금도 이것이어야 한다.

이 사례가 확정해 준 시퀀스는 명확하다. 주가 정점, 1~3분기 후 실적 정점, 가격 붕괴, 이듬해 이익 반토막. 덧붙여 모건스탠리 메모리 콜의 전적도 기록해 둘 가치가 있다. 2017년 11월의 경고는 타이밍이 12개월 일렀지만 방향은 맞았다. 2021년 8월의 마이크론 하향 역시 이후 하강을 선행했다. 2024년 9월의 SK하이닉스 비중축소(목표가 26만원에서 12만원)는 틀렸고 한 달 뒤 철회되었다. 방향 기준 3전 2승 — 조롱으로 소비하기엔 부담스러운 기록이다. 2026년 7월 초 모건스탠리가 다시 반도체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는 점은, 이 전적과 함께 읽어야 한다.

하강의 종결 메커니즘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 2019년 초 계약가 급락과 재고 누적 속에서 공급 3사는 설비투자 축소와 웨이퍼 투입 감축으로 대응했고, 하반기 들어 데이터센터 고객의 재고 소진과 구매 재개가 맞물리며 가격은 저점을 다졌다. 정점에서 저점까지 주가 기준 약 7개월, 실적 기준 약 5~6분기 — 4~8분기라는 메모리 하강의 표준 길이 안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회복의 순서다. 주가가 먼저 돌고(2018년 12월 저점), 가격이 다음에 돌고(2019년 하반기), 실적이 마지막에 돌았다(2020년). 내려갈 때 주가가 실적을 선행했듯 올라올 때도 선행했다. 이 대칭성은 현재 국면에서 바닥 신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 실적 발표가 아니라, 나쁜 뉴스에 주가가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시점이다.

사례 IV. 2020~2023 — 팬데믹 사이클과 가장 정직한 하강

팬데믹 특수로 2021년까지 달린 메모리는 2022년에 다섯 사례 중 가장 교과서적인 하강을 맞았다. 이 사이클이 특별한 것은 과잉이 사전에, 숫자로, 정확하게 예고되었다는 점이다. 트렌드포스는 2021년 11월 전망에서 2022년 D램 비트 공급이 18.6% 늘어나는 반면 비트 수요는 17.1% 증가에 그쳐 시장이 부족에서 과잉으로 전환하고 평균판매가격이 1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 17.1% 늘었다. 공급이 1.5%포인트 더 늘었을 뿐이다. 그 1.5%포인트가 가격을 15% 떨어뜨렸다. 격차 대비 가격의 레버리지가 약 10배라는 이 산수가, 메모리 사이클 분석의 가장 중요한 상수다.

D램 비트 공급·수요 증가율, 2022~2023년 (자료: 트렌드포스)
D램 비트 공급·수요 증가율, 2022~2023년 (자료: 트렌드포스)

<Chart 02> D램 비트 공급·수요 증가율, 2022~2023년 (자료: 트렌드포스)

2023년 D램 비트 수요 증가율은 8.3%로 사상 처음 10%를 밑돌았다. 역사상 최악의 수요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수요는 늘었다. 공급이 14.1% 늘며 격차가 5.8%포인트로 벌어지자 손익은 무너졌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4분기 매출 7.7조원에 1.7조원의 영업손실(순손실 3.5조원) — 2012년 3분기 이후 첫 분기 적자 — 을 기록했고, 당시 CFO는 가격 낙폭이 2008년 4분기 이후 최대이며 업계 재고는 사상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2023년 연간으로는 매출 32.77조원에 영업손실 7.73조원이었다. D램 가격은 분기 20%대의 급락을 거듭했고, 사이클 누적으로는 50% 이상 무너졌다.

주가의 선행성은 다섯 사례 중 가장 길었다. 삼성전자는 2021년 1월 초순 장중 9만 6,800원으로 고점을 만들었고, SK하이닉스는 두 달 뒤인 2021년 3월 초 15만원 선에서 고점을 쳤다. 그런데 D램 가격의 정점은 2021년 3분기, 실적의 정점은 삼성전자가 2021년 3분기·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2022년 상반기였다 — 삼성전자 주가는 자사 실적 정점을 2분기, 하이닉스·마이크론의 실적 정점 대비로는 다섯 분기가량을 앞선 셈이다. 미국의 마이크론만 2022년 1월 약 98달러로 실적 정점 부근까지 버텼다. 저점은 세 종목이 거의 같은 곳에서 만났다. 2022년 9월 말~10월 초, 삼성전자 5만 1,800원(고점 대비 약 −46%), SK하이닉스 7만 3,100원(약 −51%), 마이크론 48달러대(약 −50%) — 그리고 그 시점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발표하기 한 분기 전, 감산 발표보다도 앞이었다. 최악의 실적이 인쇄되기 전에 바닥이 완성되고, 적자가 진행되는 2023년 내내 주가가 오른 이 순서는, 2019년의 회복 문법을 정확히 반복했다.

이 하강의 출구가 이번 사이클의 입구다. 3사가 사상 처음으로 동시 감산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는 낸드 기준 감산 폭을 최대 50%까지 확대했다. 2024년부터 2025년 초까지 업계 전체가 신규 캐파 투자를 사실상 중단했다. 트렌드포스 집계로 3사의 집중 감산이 재고를 소진시키며 2023년 10월부터 가격이 돌아섰고, 2023년 4분기 계약가는 13~18% 반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25년 중반 AI발 수요가 폭발했을 때 업계는 2년치 투자 공백 상태였다. 2025년 하반기 주요 공급사 D램 재고는 수년래 최저 수준까지 소진되었고, 2026년 들어 D램 계약가는 1분기에만 90%대(93~98%) 급등했다. 지금의 품귀는 AI 수요만의 산물이 아니라, 2022~23년 하강이 만든 공급 공백과의 합작품이다.

3사 동시 감산은 자연 발생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과점화 이전의 메모리는 감산이 불가능한 산업이었다 — 내가 줄이면 경쟁자가 그 몫을 가져가는 죄수의 딜레마 구조에서, 참가자가 많을수록 합리적 선택은 증산이었다. 23개가 3개로 압축되고, 각사가 하강기의 손익을 반복 학습하고, 감가상각이 큰 산업 특성상 가동률보다 가격이 이익에 더 중요하다는 계산이 공유되면서, 2023년에야 처음으로 전원 감산이라는 균형이 성립했다. 이 규율이 이번 사이클 공급 곡선의 숨은 전제다. 따라서 이번 사이클의 공급 리스크는 3사의 규율 붕괴가 아니라 규율 바깥의 참가자 — CXMT — 와, 규율 안에서의 합리적 배신 — 마진 격차를 따라 캐파를 범용으로 되돌리는 각사의 개별 최적화 — 두 경로로 온다. 후자가 7월 중순에 이미 관측되었다는 것이 뒤에서 다룰 논점이다.

2022~23년은 격차 산수의 실증이자 현재 슈퍼사이클의 직접 원인이다. 공급 초과 1.5%포인트가 가격을 15% 무너뜨렸다면, 반대로 지금의 폭등은 수요 초과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칭적으로 — 2027~28년 신규 캐파가 점등되어 격차의 부호가 다시 뒤집히는 순간, 같은 10배 레버리지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상승의 산수와 하강의 산수는 같은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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